(수정 중)

저는 11년 전인 2000년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에 불만이 많던 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하면 미술 대학이라는 곳은 완벽한 도피처이자 제가 선택한 현실이었습니다. 시카고 예술 대학은 학부에는 전공이 정해지지 않고 학점제도 또한 없어서 이것저것 탐구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퍼포먼스와 영상 수업을 들었고 시각 문화 이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4년 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즐겁게 작업을 하면서 청소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2004년에 귀국해서 바로 카이스트 문화기술 대학원에 갔습니다. 그 선택은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과 장학금이 해결해주는 현실적인 문제 , 그리고 당시에 국가가 문화 컨텐츠 산업에 지원하면서 소위 ‘미디어 아트’에 대한 다양한 활동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또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간신히 졸업하고, 그 과정에서 저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온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학교는 열심히 다니지 않았지만 석사 논문을 쓰면서 담당 지도 선배님과 교수님들의 날카로운 비평을 소화하고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몇 년간 작가 활동을 하게 되어서 전시와 퍼포먼스를 하게 됩니다. 기획자와 선배 작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 주변에는 동년배 작가들이 아직 학생이어서 만날 기회가 적었던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때 만난 작가들과 커뮤니티 성향의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많은 작업의 중요한 원천이자 활동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2008년에 뉴욕에 레지던시를 가게 되고 그것을 시작으로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 하면서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제작 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게 되어서 퍼포먼스의 성격 또한 변해 관객 참여적인 활동과 워크숍과 강의도 작업이라고 생각이 되고, 한편으로는 집필과 드로잉, 영상 작업등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아이빔 아트앤 테크놀러지 센터에서 지원 작가와 연구자의 중간 성격인 펠로우를 하게 되어서 또 새로운 방향의 작업을 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야기는 방금 설명한 지난 10년의 가장 마지막 부분인 2010년을 중심으로, 그동안 진행한 작업과 앞으로 갈 방향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발표는 이 자리에 있는 저와 가까운 동료와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도시프로그래밍101:무대지시’는 2008년 하반기부터 2010년 초까지의 제 생각과 의견, 그리고 작업의 모음입니다. 2008년경에 사진을 찍고 소화해서 배설하는 오리 로봇을 만들 때, 복잡한 기술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을 하다 보니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과 알고 싶지 않 은것 까지 습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턴이나 협업자들과의 작업은 당혹스러운 사건들이 많아서 다른 사람의 기술을 빌려서 작업을 완성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아주 조심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적인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동안 관심이 있던 도시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영향에 대해서 연구하고, 정치적인 의견을 내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자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 서울과 대전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해서 관찰자로서 참가한 외국의 시위, 참가자로서 경험한 서울에서의 시위 등을 기록 했습니다. 그리고 도시 탐구 (특히 2009년 용산 참사를 전후로 서울에서 간행되는 구조적인 도시 폭력과 간헐적인 일시적 자율 공간들을 애정을 갖고 글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양한 곳에서 진행한 워크숍의 결과물들 등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정리했습니다. 싸여가기만 하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책의 형태로 정리하는데는 독립출판사인 미디어버스의 구정연씨와 디자이너 최빛나씨의 역할이 컸습니다. 적극적으로 독립적인 시각문화 활동을 하시는 빛나씨와의 대화는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을 구체화 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고, 텍스트는 전적으로 제가 쓰고 번역했지만, 이미지의 선택과 디자인은 전적으로 빛나씨가 주관을 하고 있었고, 제목 선택을 시작으로 물질로서 책의 방향 그리고 교정에는 정연씨가 진행하셨습니다. 이분들 외에도 교정을 봐주신 지인들과 워크숍과 퍼포먼스 진행에 도움을 주신 안국동 가옥 레지던시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원금은 작업하는데 현실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이 작업이 마무리 된 것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데 어려움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학술적인 이야기나 철학가 혹은 이론가의 화려한 단어나 복잡한 개념을 착용하거나 언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정확한 인용이나 잘못된 해석은 개밥에 도토리라고 생각이 들어서 편집과정에서 거의 전부 빼고, 몇개의 인용도 절제했습니다. 그 결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텍스트로서 Inter-textuality 를 갖지 못하기에 한계도 있습니다. 다음 작업에서는 인용을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책의 내용의 많은 부분은 뉴욕에서 만난 한 친구와 서울의 이곳 저곳을 걸어 다니면서 나눈 이야기들입니다. 외국에 살면서 종종 과거 서울의 모습이나 느낌, 냄새까지도 똑같이 기억하고 있는 것에 놀라기도 합니다. 또한 정치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에 영향도 컸습니다. 물론 개인으로서는 아직도 명확한 위치를 찾으려고 하지만 저자로서는 중립적인 위치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 중립이란 의견의 부재가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으로서 저자가 선택한 현실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나타나지만, 저의 관심사는 도시공간의 생산과 소비의 시스템에 의문을 갖고, 우리가, 즉 내가 공간의 소비자에서 벗어나 공간의 생산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4개월의 교정과 편집과 기간을 거쳐서 책이 만들어지고 한 상자가 뉴욕으로 날라왔습니다. 이 책의 작업을 맞히고 나서 ‘다시는 책을 만들지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이미 바로 다음 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에 진행한 다른 작업 중에는 1월과 2월에 도시프로그래밍 관련 퍼포먼스를 안국동 가옥 레지던시에서 했으며, 3월에는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공연했습니다. 그리고 4월에 빠리에서 퍼포먼스 ‘어디야’가 있고 5~8월에는 Bushwick 근방에 작업실을 구해서 페인팅과 드로잉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와 커뮤니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9월에는 산호세에서 ‘일인칭 시점 영상 만들기’ 워크숍을 했으며 10월부터는 더 퍼블릭 스쿨 뉴욕에서의 활동을 해서 다양한 워크숍과 세미너를 기획, 진행했습니다. 12월에는 퍼포밍 파티시페이션이라는 행사를 기획해서 진행했고 LA에 있는 탤릭 아트 익스체인지에서 발표를 했습니다. 안국동 가옥 레지던시는 작가들이 잘 진행해서 저는 큰 개입 없이 활동을 도와주는 태도에서 있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에 때로는 관련 있게, 그리고 때로는 무관하게, 장소 특수성을 탐구하는 리서치와 도시 공간에 일시적으로 개입하는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뉴욕의 어떤 대학교수인 사회학자에게 제 책을 선물하니 발터 밴야민의 ‘일반 통행로’의 구조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최고의 찬사였지만, 저는 다음에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즉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들고 그 내용이 쓰이고, 읽히고, 보이는 형식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 책에서 시위와 재개발의 관계, 도시 공간의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 그리고 저항과 순응의 경계에 대해서 고민했다면, 다음 작업은 더욱 구체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에서 시작 합니다. 도시 폭동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되었고, 그 강렬한 사건이 도시와 사회 구조의 이면을 드러내고 도시 공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1년 정도 작업을 진행했기에, 처음의 관심사 보다 많이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가 관심 있는것은 폭동의 역사적이고 사회학, 도시 정치 경제학적인 해석도 아니고, 심리학적인 분석이나 인류학적인 관찰도 아닙니다. 그리고 미학적인 탐구 또한 아닙니다. 애초에는 LA의 와츠 Watts 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 1965년부터 한인 타운에 큰 피해를 준 ‘로드니 킹’ 폭동이 일어난 1992년 사이 미국 도시 공간의 변화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의 사건이어서 아직도 도시 행정과 도시를 경험함에 많은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폭동이 왜 일어나는지 궁금했고, 그 스팩터클한 폭력이 도시공간을 파괴하는 과정에 매혹되었고 자본주의 국가의 규칙을 부정하며 일시적으로나마 무정부적인 사회의 성격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현상을 하나의 거대한 집단 퍼포먼스나 자발적인 참여가 중심이 되는 연극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제한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수많은 폭동과 사회 운동이 있었고, 몇 번의 상대적으로 작은 전쟁과 경제 위기와 부흥을 거치면서, 도시의 밀도는 질주하는 속도로 높아지고 지방은 공업화가 됩니다.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에드워드 소자 Edward Soja, 마이크 데이비스 Mike Davis, 제인 제이콥스 Jane Jacobs 같은 학자들은 이 시기의 미국의 도시와 지방을 체계적으로 연구합니다. 그리고 폭동과 사회 운동 또한 많은 연구자가 분석하고 국가에서도 그런 것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부단히 지속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성격의 폭동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도시와 다른 도시에서 반복됩니다. 저는 그렇게 도시가 폭동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에 관심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정의하는 폭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길제Gilje 같은 학자들은 폭동을 사회적인 불안이라는 개방적인 의미를 벗어나 그 구체적인 활동을 정리합니다.
1.Looting
Arson
Violence
폭동의 기간에는 대다수 시민이 구매자인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가 흔들리며, 일부 사람들은 평소에 구매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한 물건들을 훔칩니다. 평상시라면 절대로 도둑질을 하지 않을 사람들도 군중심리에 이끌리고, 또 법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 내에는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물건을 훔찹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목적의 폭도들은 국가과 자본의 상징적인 건물이나 구조물을 불태우거나 손상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을 억압하던 권력과 자본의 무능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건물이나 자동차를 불태우는 것은 절도의 흔적을 감추기 위한 것도 있지만, 중산층들의 가치관을 파괴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건물을 불태우는 경우는 거주자는 자신이지만 소유자는 그곳에 거주하지 않는 중산층이기 때문에, 자신은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미디어에서는 폭도의 모습을 때로는 흉악한 테러리스트로, 그리고 때로는 불행한 혁명가로 보여줍니다. 허나 대부분 뉴스에 비친 폭도는 중산층의 공포 심리를 조장하고 폭동의 이유와 불행한 공동체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보다는 경찰의 더욱 강력한 제제와 폭력을 정당화하게 합니다. 폭동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목적이 부재한 폭동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축구경기에서 진 팀의 팬들이 경기장 주변을 초토화한다거나, 쇼핑하기 위한 싸움 등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폭동과 사회 운동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저는 폭동을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다른 계급의 공간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시공간의 새로운 구조 변경할 수 있는 혁명이 될 수 있었지만 불발탄으로 그친 사건으로 판단하고, ‘기술이 실패할 때 현실이 드러난다.’라는 생각으로 실패를 연구해서 현실을 파악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폭도와 폭동을 바라보는 시선의 거리와 시야의 폭을 의도적으로 넓혔다고 좁힘을 반복하면서, 연구를 바탕으로 폭도의 입장에서 가상의 폭동에 참가한 저의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처음에 스팩터클한 집단 퍼포먼스로 바라보던 것에서 더욱 복잡하고 절박한 상황이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무엇에 의해서 가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전의 작업에서는 도시를 추상적인 의미에서 기계라고 생각해서 새로운 공공장소의 프로그램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 이제는 도시를 구체적인 의미에서 생물체로 생각하고 저의 신체로 도시를 경험하기로 한 변화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이 분석한 폭동의 일반적인 요인을 중심으로 제가 선택한 다섯 가지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Shared unhappiness (불행한 공동체)
Pivotal event (결정적인 사건)
Contagious (전염성)
Robbed of language (언어와 표현을 털린 사람들)
Media representation (매체)

공동체의 불행함은 그들 사회의 부조리함과 불공평함에서 시작됩니다. 자본주의 도시는 저렴한 노동력을 도시 중앙과 근변에서 필요로 합니다. 곧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그러면 공공 주거 건물이 부족하고 일자리가 부족해져서 도시는 빈민촌을 형성하게 되고, 그곳의 거주하는 자들은 불행해 집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게 되는데 종종 중산층이나 백색인종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빈민촌 관할의 경찰과는 수시로 충돌이 있습니다. 또한 신체의 측면에서 보았을때 많은 폭동은 아주 더운 날 시작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특별한 일 없이 빈둥거리다 시비가 붙고 경찰은 필요 이상으로 강력하게 대응을 하다 보면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시기의 미국에서의 폭동은 많은 부분 백인 경찰이 흑인이나 유색인종을 구타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 시작됩니다. 불행한 공동체는 그것을 빌미로 목적을 갖는 공동체가 되고 그동안 받았던 구조적인 억압과 결정적인 사건을 연결하며 도시 공간과 사회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어떻게 보면 폭동과 축제는 흡사하기도 합니다. 물론 축제는 즐거움과 육체적 쾌락이 중심이라면 폭동은 파괴와 증오가 중심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일시적으로 연대하여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흡사합니다. 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폭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전염성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폭도가 폭력을 선택하는 이유는 기회주의적인 욕망도 있지만, 사회에서 특정 분류의 교육과 재활에 무관심하므로 정당한 요구를 할 언어와 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언어를 가진 자들 또한 도,(특히나 힙합 가수와 흑인 목사들의 역할이 이렇습니다) 폭력을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매체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신문과 뉴스에서는 작은 집회도 폭동으로 묘사하는 때도 있고, 그 사건이 알려지는 것이 불리하다면 무시하는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영화와 음악 같은 대중매체에서는 흑인들을 법에서부터 자유로운, 법을 초월하는 깡패로 묘사되고, 젊은이들은 그럼 모습에 매혹되기도 합니다.

리서치를 할수록 두 가지 의문이 생겨서 작업의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폭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건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젋은 철학가 메디 카셈 Mehdi Belhaj Kacem 은 “왜 현재에 모든 사건은 부정적인 사건: 즉 폭동이 될 뿐이고, 긍정적인 사건: 즉 혁명이 되지 못하는가?” 라고 질문합니다. 물론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이분법에 따라서 사건을 본다면 폭동은 도시공간의 잡음(노이즈), 그리고 혁명은 운동(에너지)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노이즈가 없는 에너지가 있을 수 없듯이, 폭동은 이해하는 방법에 따라서 꼭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닙니다. 두 번째 질문은 폭동을 현상으로 보았을 때의 문제입니다. 한 소수 인종이나 계급이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본다면 잘못된 이유는 이러한 사건은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과 경제적인 탄압에 의해서 발생하는 증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폭동에 대해서 성실한 사회학과 대학원생같이 연구하다 보니 200년 정도의 시간의 폭을 갖고 연구하게 되고, 충분히 연구가 진행되면 다음 폭동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엉뚱한 자신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LA에 가서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고 폭동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찾아서 다녔습니다. 하지만 폭동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고 그 대신 더욱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메세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INVISIBILITY (보이지 않는) 입니다. 2011년, 요즘은 불행한 공동체와 그들의 투쟁이 쉽게 보이질 않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와 미래의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과 노동력의 착취는 잘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아주 천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급작스러운 죽음이 아니고 자살 또한 아니어서 주변 사회와 경제 상황에 맞춰서 변형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아직 많은 개인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와 프랑스, 그리고 영국과 같이 선진국의 기준에 드는 서구의 나라들은 각자의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공통으로 죽어가는 시스템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함에 흡사합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2008년 전후로 과격한 폭동이 끊이지 않고 프랑스에서도 2005년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 지역에서 큰 폭동이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뉴욕의 뉴스쿨, 런던의 UCL외 대학들과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에서는 등록금 인상과 교직원들의 부패를 비난하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의 운동은 과거의 폭력적인 시위나 폭동이나 사회운동으로 번지기보다는 공간을 점거해서 일시적인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공간을 점유하는 전략에 한계점 또한 명확히 드러나지만, 그래도 방법론에는 창의적인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미국의 경우로 다시 돌아와서 이전의 도시-인종 폭동과 같은 사건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혹은 ‘보이지 않는’ 폭동은 ‘그림자 사람’ ‘추측의 건축’ 그리고 ‘비싼 유기농 과일’의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투명인간
LA에서는 폭동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지만, 폭동의 환영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10년에는 과테말라에서 온 불법 노동자가 술에 취해서 칼을 휘두르며 거리를 활보하다가 경찰의 경고에 반응하지 않자 그 자리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그 후 정의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법원에서는 경찰이 정당한 방어를 했다고 판단했고, 시위는 로드니킹 사건같이 큰 폭동이나 운동으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피해자가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부분의 대도시나 지방 소도시 그리고 공업 단지에도 불법 체류자의 노동력이 없이 도시의 경제가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도시의 서비스 산업에는 그들의 저렴한 노동이 있기에 그 가격에 유지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흑인이 하던 일들을 이제는 멕시칸, 과테말라 등 남미인, 그리고 중국인과 아시아인들이 합니다. 이들에게 부당한 대우와 폭력이 일상적이지만 그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존재가 공론화되면 추방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즉 모두가 그들의 존재를 알고, 노동력에 의존하지만, 서류상으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몸은 투명하지만 그림자만 보이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도시와 근방의 그림자에서 노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살해당한 과테말라인은 홈디포(흔한 공구상) 앞에서 일용직을 기다리는 노동자였습니다. 제가 LA에 갔을 때도 홈디포 앞에는 그런 사람들 수십 명이 서있었습니다.

추측의 건축
추측의 건축들은 유토피아의 폐허입니다. 추측의 건축은 재개발 지역의 조감도에서 종종 등장하는 화려한 3차원 렌더링으로 다듬어진 도시의 모습입니다. 추측의 건축은 용산과 같은 곳에 지어지지 않은 건축입니다. 추측의 건축은 살아 있지 않은 공간입니다. 추측의 건축은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평면적인 정보이지만, 그것이 다 만들어 졌을 때는 이미 과거의 미래이기 때문에,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살아 있지 않은 공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공간입니다. 흡혈귀처럼 살지도 죽지도 않은 공간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느린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추측의 건축은 이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적 스타일이자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념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추측의 건축은 한국의 뉴타운, 4대강, 송도 등 뿐만 아니라 두바이, 상해 등 곳곳에서 생산되고, 국가의 거대한 상징적인 건물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활 공간, 자동차 속의 공간 속에서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투명인간들이지만, 그런 곳에는 종종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수면하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미국에 부동산 개발과 크레딧 시스템의 결함으로 완성된 타운하우스들이 집주인 없이 비어 있는 모습을 보면, 그리고 많은사람들이 살 집이 없어서 부유한다는 것이, 그리고 추측의 건축이 더욱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유기농 채소
미국에서 생산되는 식품 대부분은 그러한 투명인간들의 손을 거칩니다. 저는 집 주변 슈퍼마켓에서 산 유기농 브로콜리가 너무 비싸서 이것이 어디서 온 것인가 찾아봤습니다. 잠깐의 검색 후에 그것이 캘리포니아 엘 센트로에서 수확된 것이고 그 지역의 아래에는 멕시카나라는 멕시코 경계 도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위에는 솔톤 시 라는 환경 재앙에 가까운 인공 호수가 있습니다. 그 후로 제가 사는 모든 채소와 과일 등의 출처를 찾아보고 있는데 , 이곳 서울에 와서 먹은 오렌지나 석류도 투명인간들의 손을 거쳤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벗어나 중남미에서 생산되는 채소도 합법적으로 생산-유통될 가능성이 있지만 경제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는 식민지와 다를 바 없는 계약으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즉 먹는 사람의 신체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친환경-유기농 제품이라고 선전되는 야채들도 큰 비약을 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폭력의 생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주변의 많은 사람처럼 민주주의는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고 자본주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학습 받았습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쌍둥이 같아서 자연의 파괴와 노동력의 착취를 기본으로 합니다. 이제는 이념의 유혹보다 경제를 중심으로 한 연대가 국가의 지리적인 경계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한 나라의 국가만큼이나 한두 기업이 영향력을 과시하는 나라도 있고, 한때는 정치적, 이념적 경쟁자들이 경제적인 목적으로 하나의 거대 경제국으로 연합되는 과정도 보았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뒷골목에서 중국인들이 만든 명품 가방을 아프리카인이 팔다가 스페인 브로커와 경찰 사이에서 소모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Biutiful 에서 보듯이 이제는 공간의 경계보다는 경제적인 공간에서 구조적인 폭력과 착취가 이뤄집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내재하는 친숙한 것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육체적인 존재, 그리고 신체의 욕구를 거부해야지만 탈-자본주의적인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신체가 내 두뇌와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을때 어떻게 해야하나? 도피가 가능하다면 고려할 것인가? 나의 두뇌 안의 공간을 사용해서 창의적인 상상을 하고 소설의 공간 안에서 자유로울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가지고 앞으로 작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작업 방법은 세가지 정도의 레이어의 활동을 할것입니다. 그 내용은 곧 작업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2011년 1월 21일. 더 북 소사이어티. 서울. 최태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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